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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길 옆의 샛길, 일탈을 꿈꾸며

큰길로 잘 가다가 종종 옆길로 빠진다. 옆길은 큰길 옆으로 난 작은 길이다. 살다 보면 크고 넓은 길보다 좁고 비탈진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옆길에서 또 옆길로 빠지면 본래 길로 돌아오기 어렵다.     각본이 없으니 사는 게 맨날 옆길로 새는 기분이다. 마음 먹은대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옆길이나 샛길로 빠진다. 본래 해야 할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옆길로 샜다고 비유한다. 가야 할 고지가 저만큼 보이는데 슬그머니 돌아서거나 중턱에서 뱅뱅 돌다 하산한다. 용기 없음이 분명한데 들이댈 이유는 백만가지다.     큰길이 아니라도 정겹고 그리운 길이 있다. 마을을 거미줄처럼 엮은 동네의 좁고 아늑한 골목길은 좋아하는 사람과 어깨 스치며 지나갈 수 있어 좋다.     딴 길에서 옆으로 새는데 나보다 더 큰 명수가 있으랴!   내 초등학교 학적부(학교생활기록부)에는 ‘명랑쾌활 하고 솔선수범하며 주변을 돕고 창의력이 뛰어나며’까지는 좋은데 ‘산만하고 놀기 좋아한다’로 끝맺음 해서 어머니 보여드리기 민망했다. 매년 같은 문구로 쓰여있어 담임 선생님이 전 학년 기록을 베껴 쓴 게 아닌가 의심도 한다.     근데 그 기록은 진짜로 맞다. 아직도 나는 시시각각 수 십 가지의 생각이 떠올라 엉뚱한 일 벌이고, 산만하기 그지없고 끼가 넘쳐나 놀기 좋아한다.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놀기 좋아한다’가 ‘일하기 좋아한다’로 ‘일’이 ‘놀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부모 염색체를 고스란히 물려 받는다. 부모는 애꿎은 자식 닦달하지 말고 자신의 DNA를 원망해야 한다.     성격은 바꿀 수 없지만 성품은 바뀐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부모의 노력과 정성으로 성품은 바꿀 수 있다. 동으로 가라면 서로 달리고, 방랑기를 주체 못하는 딸 위해 어머니는 등잔불 돋우고 한석봉 어머니처럼 밤 새워 떡을 썰었다.         지금도 나는 옆길로 샐 궁리를 한다. 조금 더 다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선다. 길치라서 표지판이 붙은 길도 못 찾는 주제에 안 보이는 길을 찾다보면 캄캄한 숲 속에서 밤새 헤맨다.   이 일하며 저 일 벌이고, 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꿈꾸는 시간은 황홀하다. 사는 게 지루하지 않고 매일이 유쾌하다. 좋게 말하면 창의력 발동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는 돈 키호테처럼 짜릿한 쾌감을 즐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세계 최초 근대소설로 평가된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이자 문학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시골뜨기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점차 상상 속에 빠져들어 스스로 편력 기사라 생각하고 모험을 하는 떠돌이 방랑 기사다. 스스로 ‘돈 키호테 데 라만차’라 칭하며 농부인 산초를 꼬여 하인으로 삼고 모험을 즐기는 환상과 왜곡을 넘나드는 중세식 판타지 소설이다.     세월이 바퀴를 녹슬게 한다. 꽃길인 줄 알았는데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고 인생의 축포는 불꽃놀이로 허공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일탈은 신선한 바람이다. 한번 스쳐간 바람은 다시 볼을 쓰다듬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서 꼬여진 생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아도, 매듭 자르지 말고 샛길이던 옆길이든 부지런히 가면 길의 끝에 도달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샛길 일탈 샛길 일탈 맨날 옆길 한석봉 어머니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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